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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친일 논란 정리|증조부 안상호 기록과 친일파 후손 논란

by 수지빈 2026. 8. 13.

    [ 목차 ]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배우 하영을 둘러싼 가족사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영은 최근 방송에서 자신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증조부가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고 고종 황제를 진료한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방송 이후 증조부로 알려진 근대 의사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활동 기록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친일파 후손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하영·정해인 출연 323회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다시보기

 

특히 안상호가 1916년 친일 성향 단체인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기록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등장한 기록 등이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1909년 이재명 의사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가운데 안상호가 포함됐다는 역사 연구 자료까지 재조명되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하영 친일 논란이 시작된 이유

논란은 하영이 방송에서 자신의 집안 내력을 소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하영은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부가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증조부부터 이어지는 의사 가족의 전통을 설명하며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소개했습니다.

 

방송 이후 온라인에서는 하영이 언급한 증조부가 근대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후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활동을 조사한 자료들이 공유되면서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대정친목회는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단체로, 이후 친일 성향의 단체로 평가됩니다. 이 단체의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기록이 확인되면서 친일 논란의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한국 근대 사료 DB

 

db.history.go.kr

증조부 안상호의 주요 기록

안상호와 관련해서는 대정친목회 기록 외에도 일제강점기 언론 자료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1918년 12월 10일자 매일신보 인터뷰에는 안상호가 일본식 의복과 식생활을 하고 가정에서도 조선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일본인과 같은 생활방식을 강조하고 자녀들이 조선어를 자연스럽게 알지 못한다는 내용은 당시 일제가 추진하던 동화정책과 관련해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그러나 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언론의 성격과 기사의 작성 배경, 실제 발언의 맥락 등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해당 기록은 안상호의 당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만, 하나의 기사만으로 그의 전체 생애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대정친목회와 친일 논란

이번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는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기록입니다.

대정친목회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만들어진 단체로, 경제인과 관료, 언론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이후 조선귀족과 대지주, 예속자본가 등이 중심이 되는 친일 성향 단체로 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안상호의 이름이 평의원 명단에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개인적인 친목 활동과는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과 그가 단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실제 친일 행위의 범위와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활동 내용과 관련 자료를 추가로 확인해야 합니다.

안상호와 이완용 치료 기록

안상호의 이름이 또 다른 역사적 사건에서 등장한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역사학자 박영석의 이완용 연구와 관련해, 안상호가 1909년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기록이 소개됐습니다.

 

1909년 12월 22일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국왕 추도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이완용을 공격했습니다. 당시 이완용은 중상을 입었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연구 자료에는 한성병원과 대한병원 의료진 및 박종환, 안상호 등의 의사들이 이완용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을 처단하려 한 의거 직후 체포됐으며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1910년 9월 30일 순국했습니다. 반면 이완용은 치료를 받고 생존했습니다.

하영 소속사의 입장 번복

이번 논란이 더욱 커진 데에는 소속사의 초기 대응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영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처음에는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취지로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후 추가 확인을 거쳐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실제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입장을 수정했습니다. 소속사는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사실무근이라고 답변한 점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하영 외 친일파 후손으로 알려진 인물들

하영의 사례처럼 유명인의 가족이 일제강점기 인물과 연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발생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배우 강동원은 외증조부 이종만의 친일 행적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겪었습니다. 당시 강동원은 외증조부의 행적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점과 논란 초기의 미숙한 대응에 대해 사과했으며, 이후 영화 1987에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이한열 열사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뮤지션 전범선은 소설가 이인직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직접 공개한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조상의 친일 행적을 숨기기보다 관련 작품과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며 가족사를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친일파 후손 논란은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 여부나 친일 인사의 후손 여부가 정치인의 역사관과 함께 검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치인 김무성의 부친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친일 행적 논란이 제기된 인물이며, 정치인 홍정욱 역시 조부인 홍종철의 일제강점기 행적과 관련해 과거 논란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다만 정치인의 경우에도 조상의 행적과 본인의 정치적 행위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 어떤 역사관과 정책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별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재계와 문화계에서도 친일 인사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의 부친 이찬우와 관련한 일제강점기 행적이 여러 자료에서 거론되는 등 기업가 집안의 과거사를 둘러싼 연구와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다만 특정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조상이 친일 행위를 했다는 주장 가운데에는 자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단순한 인터넷 게시물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명단만으로 친일파 후손 여부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친일파 후손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후손에게 조상의 죄가 상속되는가’와 ‘조상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후손에게 이어졌는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손이 조상의 행동을 직접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상의 친일 행적만으로 후손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반면 조상의 행적을 미화하거나 숨기거나, 그 과정에서 형성된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다면 별도의 사회적 비판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결국 친일파 후손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유명인의 가계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조상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역사적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친일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과 당시 사회적 영향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동시에 후손 본인의 가치관과 행동은 조상의 행적과 분리해 평가해야 합니다. 특히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서는 자극적인 ‘친일파 후손’이라는 표현만 소비하기보다 독립운동가와 친일 인사들의 역사적 행적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현재 세대가 과거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마무리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은 연예계 이슈를 넘어 일제강점기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친일 청산, 후손의 책임이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광복절을 앞둔 만큼 이번 논란을 단순한 연예인 논쟁으로 소비하기보다는 독립운동과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미화하거나 숨기기보다 확인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며,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사실처럼 단정하지 않는 태도 역시 필요합니다.